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하마드 나지불라 (문단 편집) === 최후 === 1992년, 나지불라 정권을 무너뜨리고 카불을 장악한 무자헤딘의 우두머리 중 하나였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는 과거 자신과 내전을 벌이던 적군의 수장이었지만 그가 한 때 아프가니스탄의 전 지도자였음을 고려, 참작해 나지불라를 보호했다. 한편 정권을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무자헤딘 지도부 인사들은 나지불라와 나지불라의 전임자였던 [[바브라크 카르말]][* 그래도 이 사람은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기 훨씬 전에 [[아프가니스탄]]을 나가 [[러시아]]에서 사망해, 나지불라처럼 맞아 죽지 않았다.]과 모하마드 아슬란 와탄자르[* 할크파 멤버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국방장관을 역임한 인물. 아프가니스탄 민주 공화국 멸망 이후 러시아로 망명 갔다가 '''집세를 내지 못해서''' 가족들과 함께 쫓겨나, 좀 더 물가가 저렴한 [[우크라이나]] [[오데사]]로 이사간 후 그곳에서 56세의 나이로 쓸쓸히 죽었다고 한다.], 누르 울 하크 울루미 등 옛 친소련 정권의 전직 대통령들과 정부군의 고위급 장성들을 전범으로 기소, 처벌할 것을 주장했으나, 마수드 등 당시 일부 온건파 인사들이 이를 반대했다.[* 사실 무자헤딘 역시 1980년대 소련과의 전쟁이나 1989년 소련군 철수 이후에 일어난 아프가니스탄 나지불라 정부군과의 내전에서 민간인 학살과 가혹행위, 정부군 포로에 대한 일방적 사살이나 학대와 같은 전쟁범죄들을 자행하던 전적이 있었기에 이들도 전쟁범죄의 책임에서 그렇게 자유롭지 않았다.] 동년 5월 아프가니스탄의 [[부르하누딘 라바니]] 대통령은 나지불라, 카르말 등 옛 친소 정권 시기의 전직 대통령과 옛 정부군 장성들에 대한 사면령을 내리면서 나지불라는 무자헤딘 정권 아래에서 처벌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탈레반]] 세력이 급성장하자 마수드는 카불을 내줄 수밖에 없었고, 마수드는 나지불라에게 같이 카불을 떠나 아프가니스탄 북부 산악지역으로 피신할 것을 권했으나,[* 주변국 월경을 통한 해외 망명도 권유했다.] [[파슈툰족]]이었던 나지불라는 [[그런거 없다|탈레반도 대부분 파슈툰족이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사망 플래그|카불에 남았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치명적인 실수였는데, [[탈레반]]은 1996년 카불을 장악하자 파슈툰이고 유엔이고 뭐고 없이 나지불라를 보호구역에서 끌어냈다. 그리고는 [[내가 고자라니|거세]]시키고 한동안 [[조리돌림]]하다 처형시킨 뒤 그 시신을 대통령 궁 앞 신호등에 목을 매달아 험한 꼴을 당하게 만들었는데, 비록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라지만 당연히 이런 처분은 이슬람권에서도 비난 성명을 낼 정도로 잔인했고, 탈레반 일부에서도 "저런 건 알라의 뜻이 아니다"라고 말이 나왔을 정도. 국내에서도 당시 탈레반의 카불 점령을 보도한 대한민국의 모 군사 잡지에 조리돌림당하는 나지불라의 사진이 실린 적이 있었고, 2021년 [[시사직격]] 미군 철수 후 아프간을 다룬 다큐에서도 그 장면이 뿌옇게 처리돼 잠깐 나온 적이 있다. 1998년 KBS의 아프간 다큐에서도 교수형된 나지불라의 시신을 그대로 내보낸 적이 있었다. 살아생전에는 평판이 좋은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지불라가 죽은 이후로도 아프가니스탄은 내전과 빈곤,부패로 홍역을 치르는것은 여전했다. 이 때문에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나비불라의 영민함점이 주목받아 재평가 바람이 불었고, 탈레반 내부에서 조차도 나지불라가 적이었다해도 나라 다스리는 방법은 알았다면서 존경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지경이었다. [[분류:아시아의 독재자]][[분류:아프가니스탄 대통령]][[분류:1947년 출생]][[분류:1996년 사망]][[분류:아프가니스탄의 무슬림]][[분류:의료인 출신 정치인]][[분류:카불 출신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